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계렬보도 7

나와 골프 이야기

 

개폼에도 싱글난다

'박빠따'로 유명한 칭다오화청국제여행사 박영권 사장

사진설명: 박영권 사장

 

 

  박영권 사장과 골프를 쳐본 사람들은 모두 이런 느낌이 있다. 어설픈 삐딱한 어드레스 폼인데도 공은 정확이 맞아 나간다. 그 폼을 만만히 보고 덤벼들었다가 코가 깨진 사람들이 많다. 그린 위에서의 퍼터(推杆)도 일품이다. 필드를 이리저리 돌다가 온을 시켰다 하면 1퍼터 혹은 2퍼터만에 마무리한다. 딱 넣는다고 말하고는 이리저리 라인을 보고 그 먼데서 친 공을 훌컵에 훌 집어넣을 때면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박빠다'라는 소문이 바로 함께 라운딩하던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와 칭다오는 물론 웬만한 조선족 골퍼들도 다 알게 되었다.

 고향이 연변 왕청인 박영권(54) 사장은 톈진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 중한수교(1992) 이전에 칭다오항무국()에 분배받았다. 칭다오에 도착했을 때 그의 말대로 뒷거러마이에 30위안, 그리고 궤짝 하나에 책가방이 전 재산이었다. 출퇴근을 하려고 외상으로 산 자전거값을 갚기 위해 화물선의 하역작업을 아르바이트 하면서 땀방울도 꽤나 훔쳤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기회의 여신이 손짓했다. 개혁개방과 더불어 칭다오시가 '남조선' 손님들을 맞이하면서 한국어통역을 찾게 되었는데 칭다오 단시위(市委)에서 당안을 뒤지다가 칭다오에 분배받은 조선족 출신 대학생 박영권씨를 찾아낸 것이다.

 

  한국인들의 골프투어 개척자

  1989년부터 박영권씨는 남조선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1999년 칭다오 화청여행사 한국부 부장을 담당하던 박영권씨는 당시 칭다오 주재 대한항공 신현오 지점장의 소개로 한국에서 온 40여개 골프여행업계 대표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골프투어(여행)를 하기 위한 칭다오 사전답사 만남이었다. 그 때 한국에서 동행온 엑스포여행사 전 회장이 그에게 물었다.

  박 부장은 골프를 칠 줄 알어?”

  모르는데요

  골프 칠 줄 모르면 믿음이 안가기에 줄 수 없어!” 전회장의 말이다.

  아니, 그러면 배우면 안되겠습니까

  박영권 부장은 말한대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1999 4 8일 그는 고중동창인 칭다오LG화학대표 박영길씨와 함께 노산구 농해원(弄海)골프연습장에 들어섰다. 박영길 대표가 1년 먼저 골프를 배웠기에 잘 치겠다 싶어 그에게 청을 든 것이다.

  골프는 그립 잡는 것이 제일 중요해-"

  박영길씨가 골프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두어시간이 지났을까.

  됐어. 너는 원래 골프에 소질이 대단하구나. 우리 그대로 필드에 나가자."

  이렇게 박영권씨는 곧장 칭다오국제골프장에 들어섰다. 핸디를 왕창 받고 쳤는데도 나올 때는 호주머니가 후줄근해졌다.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박영권씨는 연습장이라는 것을 모른다. 모든 골프를 필드에서 연습하고 익힌 것이다. 그후부터 박영권씨는 동창인 박영길씨를 골프 계몽선생(蒙老)이라고 공손히 부른다. 박영길씨가 여러 골프장 다니면서 박영권의 영자돌림 동생이라 해서 VIP 대우를 받은 것은 후의 일이다.

  3개월 후 박영권씨는 한국의 전 회장 일행 3명을 칭다오로 초청하여 라운딩을 했다. 그 때 타수가 99타였다. 전 회장은 처음에 박영권씨의 폼을 보고 머리를 설레설레 젓더니 경기가 끝나 장갑을 벗은 후에는 정중하게 한마디 했다.

  폼은 개폼인데 타점이 상당히 좋아. 하하

 그 때부터 한국인들의 중국골프투어를 박영권씨가 주름잡게 되었다.

  99년 당해에 2000, 2000년에 4000, 2001년에 8000, 2002년에 1.2만명, 최고봉인 2007년에는 1.8만명까지 급상승했다.

  당시 박영권씨는 칭다오의 여러 골프장에 담보금을 내고 부킹시간을 사전 예약하였는데 화산골프장에만 400만 위안을 주고 신구장을 아예 아도(承包) 내버렸다. 그러다보니 화산의 회원들도 신구장에서 공을 치려면 일주일 혹은 10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박영권 사장은 그 때의 상황을 회상하면서당시 화산회원들에게 상당히 미안한 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당시 국제골프장에 근무하다 남산골프장으로 전근한 조선족 강빈씨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비싼 국제골프장을 사용하는 조선족들에게 강빈씨가 항상 회원대우를 해주고 남산골프장에 찾아가는 조선족들에게도 항상 베풀었다고 한다.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로고를 만든 회장

  2008년 화청여행사 박영권 사장은 만장일치로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제5기 회장에 당선되었다.

  제가 회장이 되면 회원들의 회비를 일전 받지 않겠습니다.”

  그의 경선강령이 회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회장에 부임해서 그는 회장단을 묶었다. 명예회장에 칭다오무역촉진회 허헌 처장, 부회장에 백승범, 박일화, 총무에 정헌조씨를 임명했다. 그외 당시 칭다오에 있던 연변의 배우 출신 박춘우씨를 집행위원장으로 마이크 사회를 전문 담당하게 하였다.

 박영권 회장이 한 첫번째 일은 골프협회 연혁 책자를 펴낸 것이다. 역대 회장들의 이름과 행사 내용을 기록하고 특히 협회 로고를 제작하였다.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영문 자모의 앞글자를 따서 QCGH 라는 로고가 그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흰 골프공에 로고를 넣었는데 흰색은 백의동포를 상징한다고 밝혔다.

 남다른 박 회장의 행보에 골프협회에 회원들이 몰렸는데 평시 일반 경기에도 80여명이 참가하군 했다. 따라서 협회는 두달에 한번씩 경기를 조직하고 연말총화대회도 치렀다. 양력설 전후에는 '송년의 밤'행사도 조직했다.

  박영권 사장은 한국 관련 골프투어에 종사하는 전국조선족골프여행업계의 모임인 KTG회장(초대회장 김의진)도 역임하였다.

 박영권 사장은 2년간 회장을 담임하면서 회원들의 회비 대신 여러 사장들의 협찬을 많이 받아 원활한 운행을 도모했다. 지금도 그는 그 때 도와준 사장들의 이름을 한명한명 부르면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골프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어요

  2009 11 1일 박영권 사장이 회장 임기를 마치는 그해 초겨울의 어느날, 그는 지인들과 조를 무어 칭다오국제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 4번 홀을 지나 5번 홀 티박스에서 공을 치려고 준비하던 그는 그만 뇌출혈로 풀밭에 쓰러지고 말았다.  황급한 일행은 즉시 119를 호출하여 병원에 실어갔다. 다행히 경미한 뇌출혈이라 박영권씨는 수술 후 9일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평소에 줄담배 피우고 술 마시면서 과로를 했는데 뇌동맥에 종류가 생긴 것이다.

  만약 그 때 골프를 안 치고 술을 마시거나 자거나 했으면 그 후과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동행자들이 있었기에 적시에 병원으로 이송되어 최적의 시간에 수술을 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박영권씨는 그날을 회억하면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뇌출혈이 와서 아까운 최적의 구급시간을 놓쳐 평생 반신불수나 아예 사망에 이른 사례들도 수두룩하다고 한다.

  그 때로부터 그는 담배를 끊었다. 퇴원하는 날 의사가 더 오래 살고 싶으면 담배를 끊으라고 충고했기 때문이었다.  

  뇌출혈사건이 생긴 이듬해 봄 화산골프장에서 골프협회 회원대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 박영권 사장이 나타나자 모두 이상한 눈길을 보내왔다.

  순간 나를 환자취급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환자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져야죠

  당일 나인홀을 치고난 박영권 사장은 체력이 딸려 카트를 불러 나머지 나인홀을 마쳤다. 그 상황에서도 타수는 88타가 나왔다.

  그 후 박영권 사장은 체력을 회복하면서 골프 실력이 오히려 한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라운딩을 마치고나서는 경기에서 진 친구들에게 그는 우스개로 말한다.

  당신은 환자도 못 이겼으니 집에 들어가 앉아있어야겠소 하하하

  새옹지마라고 골프가 인생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9 6 23일 박영권 사장은 싸이클버디를 기록했다. 이태룡, 조학동, 황동길 사장이 그 현장을 함께 지켜보았다.

  2012 6 2일 박영권 사장은 연변의 해란강골프장 마운팅코스에서 -1 언더를 친 71타의 베스트 성적을 기록했다. 함께 6인 골프를 동행한 허성일, 남상철, 이상철, 김병위, 김정국 등은 단번에 후줄근해진 저들의 호주머니를 만지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 개폼에 언더를 치다니-“

 “골프는 실제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 운동이예요. 즐거운 골프를 하려면 트리플이나 양파를 한 경력을 빨리 잊어버리고 파하고 버디 한 좋은 기억만 남기면 됩니다. 좋은 성적을 기억하면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즐거운 인생이 옵니다”

 박영권사장의 즐거운 골프에 대한 비결이다.

  / 박영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