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하에서 느껴보는 겨울의

김춘실

 



  얼음의 도시 할빈에서 사는 우리가 막하로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한겨울의 극한이 고봉으로 치닿는 새해 첫날 말이다. 북위 53도, 중국의 북쪽 끝자락, 이곳의 겨울 추위는 얼어서 터질 정도라고 하니 그 짱짱한 겨울맛을 한번 실감해보고 싶었다.

할빈 역을 출발한 열차는 치치할을 지나 대흥안령으로 질주하면서 바깥 기온은 점점 하강선을 긋고 있다고 열차안의 기온알림판이 수시로 알려주고 있었다. 영하 38도, 영하 40도, 영하 42도...

하지만 바깥 세상과는 달리 열차안은 시종 영상 28도의 온도가 보장되어 승객들은 저마다 두터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반팔 적삼 또는 여름옷 차림들이다. 실로 엷은 차창을 사이두고 두 계절인 겨울과 여름을 거닐다니 이 역시 막하여행이 부여한 고마움이다.

막하에 이르렀을 때는 여명이 밝아오는 이른 아침, 우리를 맞는 관광차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도와 여행배낭을 차에 실으며 어디에서 왔냐며 인사말을 건넸다.

그래서 할빈에서 온다고 했더니 아저씨는 단통 눈이 휘둥그래진다. 한빈도 춥기는 매마찬가지일텐데 뭘 보려고 여행을 오느냐는 눈치였다. 하지만 서로의 이야기가 오가면서 아저씨도 이해가 되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요즘 들어 이곳의 최저 기온이 영하 40도를 웃돈다고 하니 우리가 사는 할빈보다 적어도 십도 이상 더 추운 것이다. 그래서 마치도 추운 혹한과 싸우러 나가는 용사들처럼 상해서서 온 부부, 귀주에서 온 20대 여대학생, 진황도에서 온 40대 아줌마와 그의 아들... 우리 팀의 관광객들은 너나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똥똥 감고 또 싸서 저마다 눈만 빠금이 내놓고들 있었다.

우리 일행은 차에 앉아 우선 볼걸,놀거리, 먹거리가 많다는 '북극촌(北)'으로 향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제일 북쪽에 위치한 관광풍경구이다. 달리는 차안에서 우리는 저마다 기자가 되어 가이드에게 물음을 제기하며 궁금증을 풀어갔다.

30여년 전인 1987년, 특대삼림화재로 이곳의 산들은 모두 민둥산이 되었고 막하시는 잿더미로 되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가이드의 고모되는 분도 그번 재난에 세상을 떠났다며 그는 잠간 뜸을 들이며 말끝을 흐렸다. 후에 여행코스의 하나인 '대흥안령화재기념관'을 돌아보았는데 너무나 가슴이 아팠었다.

(왜 산에는 하늘을 찌르는 아름드리 나무가 없지?)

(왜 산에는 여기저기에 나무 밑둥이만 널려있지?)

막하땅을 밟으면서 가졌던 의문부호도 때서야 소리없이 풀려갔다. 이런 침통한 교훈이 있기에 막하사람들에게 '방화'란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과 같이 피와 살 속에 밀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 관광객들에게 담배 피우는 것은 허락되어 있었다. 막하의 겨울이 하도 춥기에 입에 물었던 담배꽁초는 땅에 떨어지기 전에 벌써 허공에서 얼어들기에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가이드는 우리를 보고 달리는 차앞을 주시해보라고 했다. 백여미터를 앞두고 새뽀얀 기체가 그냥 밀려가고 있었다. 안개인가? 아니면 스모그인가? 가이드가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것은 '냉기(冷) '였다. 몹시 추운 겨울철에만 나타나는 자연현상인데 막하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색다른 겨울 풍경이었다.

막하시에서 북으로 80여 킬로미터 더 들어가야 하는 북극촌은 2백여 세대가 사는 편벽한 변강마을이었다. 마을의 변두리로 국경강인 흑룡강이 흐르고 그 강을 사이두고 '이거나스이뤄'라고 하는 러시아 마음과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옛날, 두 마을 사람들은 사이좋게 지냈던 터라 구속없이 강을 오가며 서로 특산품들을 교환했었고 또 러시아 처녀들이 마음에 드는 총각을 찾아 북극촌에 시집을 오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평범하던 북극촌이 지금은 우리나라의 제일 북쪽에 있는 특수한 지리 위치로 겨울철에는 혹한 체험, 여름에는 피서지로 방방곡곡의 관광객들을 끌고 있었다.

북극촌 관광구에는 '신주북국(神州北)', '중국북극점(中)', '북극 성탄촌(北极圣诞)' 등 여러가지 경물들이 많아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가는 곳마다 꼭같이 눈길을 끄는 간판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제일 북쪽(最北)'이란 글이었다.

'제일북쪽우전국(最北)', '제일북쪽초소(最北哨所)', '제일북쪽일가(最北一家)'... 일행은 우리나라 제일 북쪽에서 산다는 이 가정을 방문했다. 순 나무로 지은 아담한 단층집이었는데 칸칸이 막은 방이 8개나 되었고 뜨락도 꽤나 너른 편이었다.

마당에는 자가용, 경운기에 오토바이도 세워져 있었다. 관광업이 흥기하면서 이 가정도 그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데 요즘은 간이음식점까지 곁들여 짭짤한 수입을 얻고 있다고 했다. 완던바 하고는 주인의 손맛을 보는 것도 일거양득이라 생각하고 이 집의 특색음식인 '川白肉'를 주문했다. 생각밖으로 맛이 참 좋았다.

시원하고 구수하고 새콤콜콜하고... 한낱 수수한 재료인 배추절임, 돼지고기삼겹살, 언두부 그리고 몇오리 당면이 이렇게 감탄의 맛을 낼 줄은 몰랐다. 한접시를 게눈 감추듯 다 먹고 나니 추위에 떨었던 몸이 어느새 다 녹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나는 얼른 주인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들었다.

이곳의 특색 관광항목의 하나인 마파리 역시 인기 항목이라고 소개했다. 마파리는 북극촌 가가호호에 다 보급되어 있는데 이전에는 중요한 교통 도구로 이용되었으나 근년에는 겨울 여행을 오는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촌민들마다 마파리로 관광장사를 한다고 한다. 한개 마파리의 한겨울 수입이 만원을 넘는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파리를 타고 즐겼을까?

물론 겨울철에 할빈 송화강에서도 여러번 마파리를 타본적이 있지만 북극의 한끝에 와서 멋보는 마파리 체험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정말로 달랐다. 꼭같은 복장을 입고 꼭같은 기발을 걸고 꼭같은 모양을 갖춘 호호탕창한 마파리대오는 관광객들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두시간 남짓이 이어지는 마파리 달리기는 손님을 태운 간단히 주변을 도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눈바다를 누비며 깊은 삼림 속으로 들어가 삼산밀림의 경치를 흔상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관광구의 경물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도는데 그것도 앞에서 뛰는 말과 같이 씽씽 달리는 마파리 우에서도 그런 풍경을 구경할 있고 원하면 가다가도 내려서 기념사진도 찍을 있는 다방면의 혜택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는 추운 몸을 녹이는 휴식터도 마련되어 있어 손님들은 화로불에 둘러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숨을 돌리기도 한다.

그날 우리는 남들이 하는 해본다며 신나게 마파리도 타보고 얼음구멍을 깨고 쇠그물로 팔뚝만한 물고기 잡는 체험도 해보면서 어린아이들마냥 그냥 웃음을 입에 물고 눈판, 얼음강판을 뛰어다녔다.

그렇다고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 추운 곳이라 핸드폰이 얼어드는 바람에 자주 배터리가 나가면서 작동이 안되었다. 생각 끝에 우리는 귀주에서 온 여학생과 한팀을 무어 번갈아가면서 핸드폰을 쓰기로 했다.

한사람의 핸드폰이 정지되면 다음 사람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후엔 다음의 핸드폰을 이용하고... 그 덕분에 지장없이 많은 경물과 즐거운 모습들을 렌즈에 담을 수 있었으니 참으로 다행이었다.

우리는 위쳇으로 '막하겨울여행'이란 그룹을 만들었다. 서로 성도 이름도 모르기에 나는 그를 '미녀'라 불렀고 그는 나를 '이모'라 불렀다. 그 며칠 우리는 참 재미나게 지냈었다.

실로 겨울여행을 처음 해보는지라 이렇게 많은 낙이 있을줄은 미처 몰랐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서둘러 막하에서 가져온 사진을 모멘트에 올렸다. 사진 제목도 똑똑히 박어넣었다. '2020년 새해의 첫날, 이곳 기온 영하 445도!' 그랬더니 난리가 났다.

"와! 시원하겠다-- 박수!"
"혹한과 싸우는 영웅, 화이팅!"

"정말 멋집니다...짱!"

찬양의 글이 연이어 올라오는가 하면 김빠진 소리들도 뛰따랐다.

"손발이 얼어떨어지지 않았냐?"
"엄청 추운데 뭘 구경해, 나참!"

"그래, 엄청 엄청 추운 거 맛보러 갔었어!ㅋㅋㅋ"

모멘트에 올라 친구들과 아옹다옹 노는 것도 여행 뒤에 찾아오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

 김춘실 프로필 

1957년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촌에서 출생.

삼차구중심소학교 교원, 가목사시민족사무위원회 종교과 과장, 흑룡강신문사 교정원 경력.

수필집 남편을 키우는 재미 중국출판에 이어 한국서  출판.

흑룡강작가협회 흑토문학상 1기, 2기 대상수상. 연변작가협회 화림문학상 수상.

연변작가협회회원.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