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입추 (외 1수)
이홍철
아플 듯이 따가운 햇살이
가을을 슬퍼하는
여름매미의 등을 아프게 핥는다
풀들의 주절대는 소리가 또렷하니
게을러진 들의 누런 풍경도
길게 허리를 편다
시간을 기다리는 여정이
긴 터널을 빠지는 기차 같다
골수 빠진 뼈 속 깊은 동굴로부터
서늘한 바람이 가을을 몰아온다
그리고 액자 속의 풍경마냥
터널 저끝에 파랗게
그리고 더 파랗게
하늘이 걸려있다.
낙타 그리고 아버지
산을 이고 가는
긴 그림자가
산보다 작은 언덕을 넘어
길보다 먼길을 간다
뜨겁게 익은 낙과(落果)를 밟으며
신음이 애처로운 그 길을
시간도 외면한 봉분을 에둘러 가고 싶다
어느 날
붕괴된 산의 잔해에 깔린
박제된 미라가
아버지라 믿고 싶다면
그래도 봉분을 만들지 말자
굳이 비문을 새기겠다고
고이 잠든 낙타를 깨우지 말아야겠다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천둥 같이 여운도 길구나…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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