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제품 업종서 선두주자 자리 굳혀
한일고무의 전동학사장
칭다오에서 고무(橡胶) 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청양구 대주촌에서 칭다오세기한일고무(世纪韩一橡塑)유한회사를 운영하는 전동학 사장(42세)이다. 장장 20년동안 고무제품이라는 한 우물을 파서 성공한 그의 노력에 대한 인정이기도 한다.
고무회사의 생산일군으로부터 영업담당으로
전동학 사장의 고향은 내몽골 우란호트시로 이곳은 몽골족의 영웅 징기스칸의 탄생지로 유명하다. 조선족학교에서 초중을 나온 그는 당지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22세의 젊은 나이에 칭다오로 진출했다.
첫 직장이 청양구 상마진(上马镇)에 위치한 고무제품을 생산하는 월담인터내셔날(미국 독자) 기업이었다. 유명한 포드자동차(福特汽车) 관련 고무제품을 생산, 조달하는 공장이었다. 여기서 그는 생산관리 겸 통역으로 재미한국인 관리인을 따라 고무업종에 입문했다.
3년만에 그는 말단 직원으로부터 점차 생산라인을 관리하는 과장으로 몰라보게 성장하였다.
그러던 차 자오난시에 한국의 한일화학고무회사가 설립되면서 이 회사의 영업과장으로 초빙되어갔다.
자동차부품, 세탁기, 냉장고 등 제품에 들어가는 합성고무제품은 물, 기름, 공기의 누수를 방지하고 고압에 견뎌내며 내구성이 강한 등 우점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여직 생산만 맡아온 그는 영업판매는 숙맥이었다. 그러나 책임지면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인지라 영업에 두팔을 걷고 나섰다. 기사 한명을 데리고 칭다오에서 차를 몰고 20여 일 동안 상하이, 항저우, 츠시, 위야오, 루이안, 타이저우 등 도시를 돌았다.
당시 중국에서 10대 문구 브랜드에 드는 백설문구(白雪文具), 일본의 독자기업 TOTO, 국내브랜드회사인 완스다(万事达), 룽스다(荣事达), 메이바오(美标) 업체들을 찾아다니면서 영업에 전념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그의 뛰어난 노력으로 한일회사의 영업액은 상승일로를 달렸다. 영업을 뛰고나니 그제야 고무제품공장에 대해 신심이 생겼다.
마침 한일회사 내부의 조직개편 원인으로 원래 하던 한국사장이 자오난공장을 떠나게 되었다. 새로운 책임자가 부임하면서 주요 담당자들을 물갈이하면서 전동학씨도 미련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홀고서기에 도전했다.
한일회사 인수
2005년도에 전동학씨는 이촌에 기계 두대를 놓고 창업을 시작했다. 생산과 영업을 모두 경험한 그였기에 창업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직업도덕을 지켜 원래 한일회사의 고객들은 한명도 터치하지 않고 별도로 영업을 뛰어 새로운 바이어회사들을 만들어나갔다.
중국에서 생산하지 않고 한국으로부터 수입해오는 제품들을 선택하여 현지생산한 것이다. 직수입하는 제품과 품질이 똑같은데다 단가가 훨씬 싸게 나온 그의 제품은 고객들의 대환영을 받았다. 그의 틈새전략이 주효한 것이다.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영업액도 20만 위안에서 400만 위안으로 매년마다 몇배씩 껑충껑충 뛰었다.
그러던중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원래 출근하던 한일회사가 영업부진으로 매각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그와 함께 매입을 신청한 회사는 당지 한족기업을 포함하여 여러 집이 되었다. 그러나 한일회사는 최종 전동학 사장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동학 사장이 한일회사 초창기부터 함께 했고 영업을 뛰었기에 그에게 맡기면 회사가 지속발전할 수 있다는 회사 리더의 판단에서였다. 당시 한일회사를 떠나 자체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원래 고객을 하나도 터치하지 않은 그의 직업정신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나젊은 조선족 전동학 사장이 가장 잘 나간다는 당시 280만 달러를 투자한 한국독자기업 한일고무회사를 통채로 인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청양구 대주촌(大周村)에 새 공장부지를 선정하여 회사의 상호를 칭다오세기한일고무유한회사로 변경하였고 자신도 등록자금 200만 위안, 총투자액이 500만 위안에 달하는 법인대표로 탈바꿈했다.
회사의 영업액도 하루가 다르게 증가하어 한때 연간 매출액이 2000만 위안을 웃돌기도 했다.
맞춤형 고무제품으로 승부를
합성고무로 만들어지는 산업용 고무제품은 볼펜, 정수기, 믹스기, 자동의자, 전자회로판, 리모콘 등 다양한 업종에 사용되고 있다.
세기한일고무창고에 들어가보면 다양한 고무금형이 1000여 가지가 된다. 업계에서 꽤 유명하다는 어느 한국사장이 한일공장에 와보고 “고무박물관”이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나 시대의 발전에 따라 리모콘 등이 지능화 터치화로 나가면서 전통고무업종이 점차 위축되어가고 있는 것 또한 실정이다.
이에 전동학 사장은 발빠른 맞춤형 제품개발과 공급으로 변신하고 있다. 기존의 산업용 합성고무제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는 동시에 실리콘(硅胶) 소재의 다양한 고무제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양한 색상의 실리콘고무소재로 만든 가방이나 옷에 걸 수 있는 각종 악세서리제품들이 요즘 그의 주력항목으로 등장되어 있다. 저주파 온열치료기에 들어가는 각종 실리콘고무제품, 심지어 골프연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골프공을 터치할 때 밑에 까는 깔개도 그의 새로운 아이템제품으로 등장했다.
얼마전에 이 회사에서 제작한 양궁의 휠 양쪽에 전동방지용으로 들어가는 합성고무제품이 미국 전시회에 참가하여 대량 판매에 성공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평범하게만 보이던 고무제품이 합성고무, 실리콘고무, 수지제품, 및 금속고무제품으로 다양하게 변신되고 있는 것이다.
20년 간 고무업종에 종사한 끈질긴 집념, 한국회사를 인수하여 성장일로를 달리는 사업능력, 다양한 고객의 수요에 맞추어 맞춤형 고무제품을 개발, 공급하는 순발력. ‘고무박물관’을 운영하는 전동학 사장의 노력은 1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3교대로 운영되고 있는 공장기계의 가동소리와 함께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박영만 기자
사진: 칭다오세기한일고무회사 전동학 사장이 새로운 고무제품 샘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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