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회 <민들레컵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송화강 2020.6 발표

 

사람의 온도

김춘희

 



주말에 대청소를 하면서 물건을 정리하다가 서랍 한구석에 조용히 누워있는 사진첩에 눈길이 닿았다. 요즘은 거의 휴대폰으로만 사진을 찍다보니 예전처럼 사진을 인쇄해서 간직하지 않는다. 낡은 사진첩에는 나의 어린시절 기억들이 긴 잠에 빠져있었다.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잠든 기억을 깨워 대화를 시도한다. 조심스럽게 펼치는 손끝에서 작은 설레임을 느낀다.

내게 말을 건네온 것은 소학교를 다니던 나였다. 나는 살구꽃이 활짝 핀 나무에 걸터앉아 흡사 누가 더 활짝 웃는지 시합이라도 한 것 처럼 너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할머니께서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다.

새하얀 살구꽃 뒤로 가려진 깨끗한 흰색 집을 보니 새로 집을 인테리어한 후에 찍은 사진이다. 내가 유치원 다닐 무렵에 부모님은 고향을 떠나 길림성 길림시의 룡담구에 속하는 아라디라고 불리는 동네로 이사를 했고 뒤로 5,6년만에 모은 돈으로 새집으로 재탄생시켰다. 새집이 더 좋아서 인지 아니면 내가 클수록 기억력이 더 좋아져서 인지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린 시절의 집은 사진속의 모습이였다.

그러고보면 최근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 묻어있는 고향의 집이 자주 꿈에 등장하는데 바로 사진속 새집이였다. 알람소리에 깬 후에도 그 꿈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의 눈앞에 아른거리듯 지워지지 않았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꿈은 무의식세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평소의 의식에서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던 것들이 꿈이라는 매체를 통해 나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비정기적으로 나의 깊은 밤을 채우는 어린 시절의 집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꿈속의 집은 사진에 담긴,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얀색 타일로 둘러싸인 벽은 처음처럼 깨끗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내가 좋아하던 빨간색 지붕은 전혀 색바랜 흔적이 없었다. 넓은 창문은 꼭 닫혀있고 집문과 집 옆에 자로 바로 연결되여 있는 창고의 문도 굳게 닫혀있었다.

앞마당에는 부모님이 한국으로 떠나기전에 모두 잘라버린 과일나무들이 다시 살아나 있었다. 사과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포도나무, 그리고 그 밑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딸기들.  밭에는 엄마가 심어놓은 각종 파릇파릇한 채소들이 키재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옛날에는 흔하던 이런 풍경이 지금은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품은 꿈의 그림일 모르지만 그때 어린 아이였던 나는 다양한 과일을 마음대로 먹는 즐거움 보다는 나무잎에 달린 벌레들이 나를 쏠까 무서워서 나무들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항상 엄마가 과일을 따서 깨끗이 씻어준 것만 골라먹었다. 그럴 때마다 혼자 알아서 따 먹을 줄 모른다며 잔소리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귀가에 들리는 듯 하였다. 만약 지금 우리 집에 과일나무들이 무성하다면 완전무장을 해서라도 반드시 내 손으로 그 즐거움을 맛보았을 것이다.

집에서 나와 시야를 넓혀 동네를 내려다 보면 두부를 가로 세로 칼로 짜르듯이 동네의 길이 쭉쭉 뻗어져 있고 시력이 뛰여난 사람이라면 동네 양끝에서 흔들며 인사할 있을 정도다. 내 기억속의 동네는 가로 총 일곱줄로 갈라져 있고 우리 집은 네번째 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학교는 동네 제일 북쪽의 유일한 큰 길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고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5분 보행거리다.

친구들은 약속이라도 학교로 향하는 작은 사거리에서 만나 함께 등교를 했고 방과 후에는 오늘은 친구, 내일은 저 친구로 번갈아가며 친구네 집에 가서 숙제를 했다. 여럿이 같이 숙제를 하면 빨리 완성할 수 있는 좋은 점도 있지만 사실 핵심은 얼른 숙제를 마치고 친구들과 놀기 위한 전략이다.

드론을 띄워 방과 우리 동네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다양하고도 즐거운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을 있을 것이다. 석양이 지고 별들이 저녁 인사를 건낼 때까지 가로 세로로 뻗은 거리에는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끊일 새가 없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모래주머니 던지기, 말뚝박기, 유리구슬 놀이, 고무줄 뛰기, 땅 따먹기, 제기차기 등 요즘은 티비 예능프로그램에서나 볼법한 게임들을 우리는 소학교 졸업할 때까지 거의 매일 온 동네를 누비며 놀았다. 가끔 어둠이 짙어져서야 집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은 엄마의 잔소리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더 놀고 싶은 아쉬움의 무게였을 것이다.

동네 구석구석 친구들과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기에 기억속의 동네 길거리는 놀이터였고 웃음소리가 자동 재생되는 공간이였다. 만약 그때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이 소중한 순간들과 길거리 풍경들을 모두 사진에 담았을 텐데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유선전화기를 사용했던 그 시기에 불과 몇년 후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촬영하고 택시도 잡고 심지어 계산까지 하는 등 거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수요를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곤 아무도 상상을 못한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손바닥만한 기계가 어린시절 좋은 추억의 원천인 친구와 함께 하는 놀이를 모두 대체 줄도 몰랐다. 만약 현재의 누군가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그 시절의 어린 나에게 휴대폰을 쥐여준다면 지금의 나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버리라고 어린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기계로 친구들과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기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대신  대가로 친구들과 함께 하는 놀이시간을 빼앗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휴대폰의 사진속에 담긴 길거리에는 쓸쓸한 외로움만 쌓여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휴대폰 하나만 들고 다녀도 모든 수요를 만족시킬수 있고 효율 편의성 향상 수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삶의 질을 제고해주는 이 착할 것만 같은 기계가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차가운 벽을 조용히 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어린 조카들의 휴가기간을 들여다 보면 예전의 우리처럼 같이 모여서 몸을 부딛히고 땀을 흘리며 노는 아이들은 아주 드물다. 특히 도시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외에는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더더욱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고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휴대폰이 한몫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게 재미있고 동영상을 보는게 훨씬 즐거울 법하다. 친구와 팀을 구성해서 하는 휴대폰 게임은 함께 놀이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도 있겠지만 그것은 얼굴을 맞대고 눈을 마주치며 교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차가운 휴대폰을 통한 소통은 인간관계의 온도를 올려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 또한 한창 잘 놀고 많은 것을 경험하고 오감으로 세상을 느껴야 하는 시기에 휴대폰이 많은 기회를 빼앗은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발짝 물러나 우리 어른들의 생활 속을 지켜보면 사실 아이들을 안타까워 입장도 아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소통방식은 대부분 기존의 음성통화에서 딱딱한 문자로 바뀌였고 글자로 표정, 목소리, 악센트와 기분을 읽어야 한다. 그러다 자칫하면 상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해와 불만을 일으키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문자가 더 효율적이고 기록을 남기는 데에 유용하지만 따뜻한 감정이 실린 대화가 더 원활하고 깊은 교류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문자로 인해 사람 사이의 온도가 낮아진 것만은 아닌 같다. 함께 마주 앉아있을 때에도 각자 손에 든 휴대폰에만 시선이 머물러 있고 눈빛으로 대화하는 능력은 현대기술의 발전과 함께 쇠퇴한지 오래된 듯 하다. 함께 있어도 외롭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게 적당한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 현대사회에 이르러 누구나 가슴 한켠 깊숙히 외로움을 품고 사는게 아닐까. 혼밥, 혼술족을 비롯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 돈 버는 남편 그리고 다 큰 자식 걱정하는 노부모님까지 어쩌면 어른이 되여 삶의 여러 단계에서 부동한 외로움을 맛 볼 수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휴대폰을 대표로 한 기계들이 그 외로움의 깊이를 더 하는 것만 같다는 사실이다.

기계와 기술은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하고 많은 즐거움을 주지만 속에서 인정을 느끼기에는 분명 역부족이다. 가끔은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의도적으로 잠시 휴대폰을 꺼놓고 옛날에 고향 동네에서 친구들과 만나 놀 때 처럼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재 눈앞의 사람에게 집중하여 눈으로 교감하고 정서적 공감을 나누면서 오감으로 서로의 온도를 느끼다보면 어딘가 쓸쓸한 마음 한 구석에도 한 줄기 빛이 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의식의 흐름 끝에 다시 눈에 들어온 사진, 그 속에 나의 깊은 밤이 머물던 집. 어쩌면 어른이 되여 차갑고 딱딱한 기계들 사이에서 점점 외로움에 무기력해질 무렵, 즐겁고 따뜻했던 추억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고향의 집이 나에게 위로와 길을 안내해주려고 한게 아니였을까.

나는 하던 일을 팽개치고 바로 회사 언니에게 연락을 하였다. 평소 주말에도 자주 문자를 주고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날만큼은 매일 보던 얼굴도 보고싶어지고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오후 커피숍에서는 한참 동안 우리의 수다와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뜻밖에 청도 곳곳에 발자국 남기기 라는 프로젝트가 탄생하였다. 주말에 적어도 하루정도는 휴대폰을 고이 가방에 재워두고 함께 등산하거나 야외운동하기, 낯선 골목길 걷기, 새로운 체험하기 등 자연의 냄새를 맞고 사람의 온도를 느끼는 것을 취지로 하는 프로젝트다.

앞으로 당분간 꿈에 고향의 집이 나오지 않아 가끔 그리울 것도 같지만 가슴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따뜻한 온기에 조금씩 녹을 외로움 생각에 벌써부터 행복감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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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희 프로필

1990 4, 김림성 교하시 출생.

2013 산동공상학원 일본어학과 본과 졸업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

현재 산동성 청도시 하이얼 냉장고 해외기획부 재직 중

  처녀작 <사람의 온도(수필)> <송화강>잡지2020 6기에 발표하면서 등단.    

 2021 1 "민들레"문학상 우수상 수상. 수필 <0순위> 2020 "애심여성컵" 6 생활수기 장려상 수상. 동시 <불꽃놀이(9)> 2020 2 '중국조선족청년문학상' 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