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연변여성’ 연변여성생활수기 공모 2등상.  2007년 흑룡강조선족작가협회 제1회 흑토문학상 대상 수상작

 

남편을 ‘키우는’ 재미

김춘실 

 

천리밖에서 남의 소개가 연분이 되어 나와 총각이 아내 되고 남편 되어 살아온지도 어언 20년 하고도 두해가 된다. 가정을 이루어 아들 하나 낳고 애지중지 그 아들을 키울 때는 애를 키울라니 출근할라니 가정살림을 할라니 매일 같이 팽이처럼 돌아치며 정신없이 헤매며 살아왔는데 그 아들이 다 커서 이젠 의젓한 대학생으로 되고 보니 드나나나 그림자처럼 남은 건 남편 하나, 그런 남편을 기둥처럼 믿고 그런 남편과 연인처럼 속삭이고 또 그런 남편을 ‘아이’처럼 ‘키우는’ 재미밖에 없는 것 같다.

한생 기자로, 작가로 ‘밥벌이’를 하는 남편은 마음이 너그러우면서도 온몸에 유머가 가득찬 재미나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의 몸 한구석엔 또 어린애와 같은 ‘천진함’과 ‘게으름’도 푹 배어 밉살꾸러기로 보이기도 한다. 몇해전부터 직장에서 영도직을 맡고 있는 남편은 밖에서는 영도로서의 풍채와 위엄이 있는 점잖고 멋진 양반이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완전히 그 틀에서 벗어난 우리 가정의 ‘큰아이’로 변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밖에서는 아무개 영도의 부인이라는 딱지가 붙어 다니지만 가정이란 우리 둘만의 세계에만 돌아오면 그렇게 우쭐하는 남편을 얼리고 달래고 훈계하고 교육하느라고 매일 분주스럽고 ‘짜증’이 날 지경이다.

 

남편의 몸치장

  초등학교시절, 위생검사 하는 날이면 한짝 발만 살짝 씻고 가서는 그 씻은 발의 신만 슬쩍 벗어보이고 검사에 통과했다는 남편은 어른이 된 후에도 위생에는 꽤나 게으른 편이었다. 열흘이고 보름이고 내가 재촉하지 않으면 머리 감을념을 안해 물을 덥혀놓고 억지로 화장실로 끌고가서 머리를 소래에 갖다대고 샴푸를 발라주어야 마지못해 긁적거리는 남편이다. 매번 내가 재촉할 때마다 “벌써, 내일 감으면 안돼?” 하는 식으로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루려고 버텨대니 언제나 강박으로 씻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거짓말 같지만 나는 결혼하여 여직껏 남편이 제손으로 옷 한견지, 양말 한짝 씻는 것을 본적이 없다.

 “당신이 대학시절에는 어떻게 옷들을 씻어 입었나요?”

 내가 하도 궁금하여 이렇게 물어보면 겉옷은 가끔가다 후배들이 씻어주고 속옷과 양말 같은 것은 더러워지면 교정의 어둑스레한 곳을 찾아 묻어버렸다고 한다. 참 어이없고 한심한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기에 나는 이의 옷차림에도 각별한 신경을 쓴다. 매일 아침이면 출근하는 남편에게 꼭 내가 맞춰주는 옷을 입게 하고는 체조를 시키듯 두 팔을 벌리게 한 후 양쪽 겨드랑이에 향수까지 뿌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인젠 습관이 된 남편은 내가 미처 생각 못할 때면 “오늘은 뭘 입으랍니까?”하며 어린애처럼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묻는다. 지금까지 나는 어쩌다 남편고 다투고난 뒤 잠자리를 다른 침대로 옮겨가면서도 그 이튿날 아침이면 남편의 구두를 닦아주고 그날 입을 옷을 챙겨주는 일만은 게을리한적 없다. 하긴 집에서 대접받는 사람은 밖에 나가서도 대접받는다는 생활의 철리를 터득해온 것도 있겠지만 남편을 반듯하게 차려입혀 내놓으면 그 아내도 칭찬받기 마련이니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매일 같이 손으로 만들어낸 ‘멋쟁이’ 남편을 볼 때마다 기분이 상쾌하다.

 

우리 ‘벽보’

 우리 책장에는 책만 꽂혀있는 것이 아니라 책장 유리엔 손바닥만한 종이장이나 오려붙인 신문쪼박이 군데군데 붙어있어 얼핏 보면 어린애들 놀이방 같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남편을 ‘훈계’하기 위해 책장에 설치한 ‘벽보’이다.

 전형적인 가정형인 나는 직장에서 신문이나 잡지 같은 것을 봐도 가정생활에 관한 이야기만 골라 보았고 마음에 드는 글은 가위로 오려내어 ‘소장’도 해왔다.

그러던 어느 , 문득 이런 글을 남편에게 많이 보이면 뭔가 ‘교육’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나는 신문, 잡지나 책을 보다가 가슴에 와닿는 글줄만 보면 전에처럼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것은 그대로, 긴 것은 나무 곁가지 치듯 살짝살짝 쳐버리며 재편집해서는 남편의 눈길이 제일 잘가는 책장유리에 붙여놓았다. ‘포근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 ‘부부사랑 키우기’, ‘세대주의 책임’, ‘자식과 부모’... 여하튼 내가 ‘교육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글은 눈에 띄우는 족족 오려내고 베껴다 붙이는데 빠를 때는 하루에 한번 그 ‘벽보’가 바뀌어지기도 하도 늦을 때는 사흘에 한번, 일주일이나 보름에 한번 틀림없이 무릇 이 ‘가정편집’이 마음에 드는 글을 고르는 날이면 우리 집 ‘벽보’를 바꾸는 날로 된다.

 처음에는 남편은 그런 종이장을 보고 어리둥절하여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읽는둥 마는둥 그저 스쳐지나버리려 했다. 그러는 남편을 억지로 붙잡아다 책장 앞에 세워놓고 읽게 했다. 다음날에도 벌을 주듯 그렇게 ‘벽보’를 보게 하였고 그 다음날에는 아침에 출근할 때 한번, 저녁에 퇴근해서 한번 왕왕 소리내어 읽도록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차츰 ‘벽보’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인젠 남편은 집에만 돌아오면 은근히 또 어떤 새로운 내용이 붙었나 궁금하여 슬금슬금 ‘벽보’ 앞으로 잘도 다가선다. 지어 며칠 가도 ‘벽보’가 바뀌어지지 않을 때면 “요즘은 편집이 꽤나 게으른데...”하며 투덜대기도 한다.

 나는 매일 같이 우리 ‘벽보’를 열심히 애독하는 남편이 더없이 ‘기특’하다.

 

우리 ‘멍청이’

 어릴적 동년의 꿈을 익히며 무던히도 놀던 숨박곡질을 엄마가 후에도 아들애와 계속했다. 좁은 방안에서 서로 상대방을 찾아내기란 매우 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나와 아들애는 숨바꼭질에 열을 올려 가끔 방안을 발칵 뒤집기도 하였다. 아들애가 외지 중학교로 떠나가자 나는 은근히 남편을 아들애 자리에 끌어들였다. 남편이 퇴근하여 돌아오는 기척만 나면 부랴부랴 방구석 어디엔가 숨었다가는 남편이 두리번 두리번 찾을 때면 혹은 문뒤에서 혹은 베란다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그이를 깜짝 놀래우기도 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소 웃다 꾸레미 터질 일’이 생겼다.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나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은 한번 나를 톡톡히 ‘보복’하려고 단단히 숨어버렸다. 그런 줄도 모르는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 바람으로 주방에 나가 솥에 쌀을 안치고 채소를 볶느라고 내 할 일만 하였다. 그런데 밥상까지 차려놓아도 진작 와야  할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조급해난 나는 남편의 핸드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핸드폰 소리가 침대 밑에서 울릴 줄이야?! 내가 어리둥절해 황소눈이 되는데 아니 글쎄, 온 몸이 땀에 축축하게 젖은 남편이 먼지를 뒤집어 쓴채 침대 밑에서 기신기신 기어나오는 것이였다. 양손에는 신 한짝씩 들고 말이다. 나는 너무도 어이없어 입만 딱 벌렸다. 이런 ‘멍청이’라구야, 신은 놔두고 숨었어야 집에 돌아온 줄 알지...

 남편은 가끔 이렇게 엉뚱한 짓을 하여 나를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한다. 이럴 때의 남편은 ‘천진한 어린애’ 그대로다. 그래서 매일같이 남편이란 ‘큰애’와 즐겁게 보내려고 가끔은 극본을 꾸며서 연출을 맡아나서는 나다.

 

남편의 사랑표현

 이성간의 사랑에서 남성들은 추상적이라면 여성들은 구체적이고 남성들은 시각형이라면 여성들은 청각형이란 말이 있다. 그래서 흔히 보면 아내들의 경우는 남편이 아내에게 달콤한 키스, 또는 “사랑해요!”, “예뻐요”를 자주 해줄수록 기분이 둥둥 뜨게 되므로 은근히 그래 주기를 바라는 마음들이다.

그런데 나의 남편은 돈도 안드는 이런 ‘사랑표현’에는 인색할 정도로 ‘깍쟁이’이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서는 거꾸로 언제나 내가 주동이 되어 퇴근하여 돌아오는 남편에게 ‘뽀뽀’도 해주고 출근하는 남편에게는 창문을 열고 손도 흔들어보이며 살갑게 굴지만 그 때마다 마음 한구석은 서운한 생각이 갈마들기도 한다. 하지만 눈치가 무딘 남편은 달이 가고 해가 가도 그냥 그렇게 일방적으로 나의 ‘사랑표현’을 받아줄 줄밖에 모르는 목석 같은 양반이다.

 그러던 어느 하루, 저녁밥을 먹은 나와 남편이 함께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는데 마침 텔레비 화면에도 한쌍의 젊은 부부가 조용한 교실에 다정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왔다. 젊은 아내가 남편의 팔을 흔들며 “저를 사랑해요?” 하고 묻자 그 남편은 멀쩡해서 머리만 썩썩 긁는다. “도대체 저를 사랑해요?” 젊은 아내가 재차 조르자 “꼭 말을 해야 하오?” 하고 묻더니 큰 소리로 “너를 사랑해!”라고 외친다. 그 말에 기뻐난 젊은 아내는 벽에 걸려있는 흑판 앞으로 남편을 끌고가더니 기어이 방금 한 말을 흑판에 써보란다... 그 장면을 보던 나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옆에 있는 남편에게 “저를 사랑해요?” 하고 따지고 들었다. 그랬더니 “그럼 흑판을 내놓소, 내 거기다 써주지”하고 엉뚱한 소리만 할뿐 기어이 그 말을 입에서 꺼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만 기분이 잡쳐 새초롬해졌다. 그런데 남편은 “하기야 우리 집에도 흑판이 있지!” 하며 씩-- 웃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에 내가 어리둥절해하니 남편은 “흑판은 여기 있소”라며 자기의 가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 말 한마디가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과연 남편의 가슴 속에는 진작부터 ‘사랑’이란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나와 가정을 무어오던 그날부터 분필로가 아니라 또박또박 심장의 맥박으로 새겨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라는 아내가 가정에서 남편을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곰곰히 돌이켜보면 나 역시 아버지와 같은 남편의 품에서 많이많이 철이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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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실 프로필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촌에서 출생.

가목사시민족사무위원회 종교과 과장, 흑룡강신문사 교정원 경력.

수필집 남편을 키우는 재미 중국출판에 이어 한국서  출판.

흑룡강작가협회 흑토문학상 1, 2기 대상수상. 연변작가협회 화림문학상 수상.

연변작가협회회원.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