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연변작가협회 화림문학상 수상작

       

가을을 타는 당신

김춘실

 


가을입니다.

 차거운 겨울을 찾아가는 깊어가는 가을의 아침입니다.

 창문을 열고 휘영청 들린 가을 하늘을 넋없이 바라보는 당신의 얼굴엔 짙은 우수가 애잔히 흐릅니다.

 오늘 따라 안스럽고 가여운 당신의 모습에서 외로운 추남의 마음을 읽어봅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마구 딩굴며 어데론가 구을러 가고픈 쓸쓸한 마음을 얼굴에만 진하게 그려놓지 말고 차라리 한방울의 눈물이라도 보여주었더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같습니다.

 철이 들어서부터 남자라는 하나의 이유로 같은 또래들과 치고 박고 하는 싸움에서도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를망정 눈에서 눈물만은 절대 보이지 말아야만 마지막 승자라는 철석 같은 맹세만은 언제나 가슴에 품었다는 당신의 유년시절이 가물가물 보이는듯 합니다.

 남자란 그래야만 하기에 남편이고 아빠란 이름까지 겹쳐진 후에는 절대 기울어져서는 아니되는 한가정의 버팀목이라며 강하다, 굳세다, 사내답다는 단어들로 자신의 몸을 포장하며 언제나 식솔들 앞에서는 연약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지름을 쓰는 당신이기에 과연 남자들이란 눈물이 없구나 하고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남자들도 때로는 연약하고 눈물도 많다는 알았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애를 외지 중학교에 보냈을 일이겠지요. 철부지 어린 자식을 낯선 곳에 떨궈놓고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아들애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차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오래오래 손을 흔들며 피터져라 입술을 깨물던 당신을 보았습니다.

  어린 것이 보고 싶어, 그 어린 것이 걱정되어 밥상에서도 잠자리에서도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던 당신을 보았습니다.

 언젠가는 목에 불명의 돌덩이 같은 ‘혹’이 생겼을 때도 그랬지요. 의사들이 치료할 가망이 많지 않다고 진단을 내렸을 때 당신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저울질하며 먼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물도 넘기기 어려운  고통을 감내하느라 비지땀을 흘리며 몸부림칠 분명 당신의 가슴 속에서 터져나오는 흐느낌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그런 굳센 남자의 양상을 보이는척 했던 당신이지요.

 가끔은 외롭고 고독할 , 가끔은 서럽고 아플 때 남자들도 속으로만 아니라 겉으로도 눈물을 보이면 안되던가요?

 남자라는 허울을 벗고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면 안되던가요?

 무릇 존재라면 이유가 있듯이 남자들의 눈물도 울어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던가요? 제발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가만히 훔쳐온 물건마냥 몰래 간직하고 쌓아두는 그런 못난 사람이 되지 마세요.

 모든 고통은 혼자서만 삭이려고 몸에 해로운 담배와 독한 술과만 대화를 하려드는 그런 외고집쟁이가 되지 말았으면 합니다.

 여자가 되어서 그런가 봅니다. 몸이 아파도 울고 자식이 보고파도 울고 사업이 순조롭지 못해도 울고...

 쩍하면 찔끔찔끔 눈물을 짜다보니 당신에 비해 너무나 수월한 삶을 살아온 같습니다.

 힘들면 기대고 바쁘면 한쉼 편안히 있는 당신이란 바위가 있어 근심과 걱정을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어린애마냥 마음대로 투정을 부렸던 자신을 돌이킵니다.

 그래서 더욱 당신은 자그마한 언덕이 애처로와 비빌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보듬어만 주었는가 봅니다.

 가끔은 작은 언덕이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추스릴 있는 좋은 안식처가 있었음에도 그걸 털끝만치도 바라지 않으면서 극구 자신 혼자만의 힘을 고집했습니다.

 달이 가고 해가 가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남자는 남자노라 번연히 알면서 자신의 지친 몸을 깊숙이 감추어왔고 여자는 남자니깐 그러려니 속에 가볍게 습관되어 잠시잠시 남자들의 고달픔을 깜빡깜빡 잊었습니다.

 남자들의 마음이란 때론 여자들보다도 여리다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을도 쉬이 타는가 봅니다.

 아파트 앞뜨락에 심어진 마가을의 국화꽃도 말없이 한송이 꺾어 해볕 잘드는 창턱에 올려놓고 귀뚜라미 울어대는 처량한 소리에 한참씩 귀를 기울이는 당신의 모습에서 완연한 가을이 보입니다.

 어데론가 무작정 떠나고도 싶고 시원히 울어도 보고픈 사나이의 가냘픈 속마음이 투명한 머루알 같이 꿰뚫어집니다.

 삶의 일상에서 때때로 있게 되고 가지게 되는 애수와 눈물이지요. 그저 문득 서늘해지는 가을이란 계절이 발로시켜줄 따름이라 봅니다. 남자들이 가을을 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꿋꿋한 것도 굳센 것도 모두가 남자의 본색이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가끔은 보기 좋은 연약함을 드러내며 얼굴에 눈물 자국을 더러 찍어가는 것도 인간에 더 가까운 본능적인 남자의 형상일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낭을 둘러메고 어데론가 정처없이 걸으며 나그네 설음을 한껏 풀어볼 있는 가을이 인간에겐 너무나 반갑기만 합니다.

 단단한 주먹으로 아름드리 고목을 쾅쾅 쥐여박기도 하고 굵은 성대로 목이 터져라 건뜩 들린 하늘에 소리지르기도 하고 그것도 성차지 않으면 퍼더버리고 앉아 꺽꺽 황소울음을 울기도 하고... ...

 당신은 그렇게 가을을 거닐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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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실 프로필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촌에서 출생.

가목사시민족사무위원회 종교과 과장, 흑룡강신문사 교정원 경력.

수필집 남편을 키우는 재미 중국출판에 이어 한국서  출판.

흑룡강작가협회 흑토문학상 1, 2 대상수상. 연변작가협회 화림문학상 수상.

연변작가협회회원.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