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작가협회 제1회 <민들레컵문학상> 가작상 수상작


수필

김신자


 

서쪽 창문의 해빛을 막아 보려고 키도 크고 시원하다고 소문난 대나무를 마당 서쪽에 심었었다. 벌써 8 년전 일이다.

서쪽 담벽 안에는 해당화 나무와 석류 나무가 보다 일찍이 심어져 있었고 해마다 봄이면 해당화 나무는 변함없이 한나무 흐드러지게 분홍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석류 나무에는 주먹 만큼한 빨간 석류들이 탐스러웠다. 거기에 대나무 푸른 병풍이 척 둘러지니 봄 꽃은 더 화사하고 가을은 보다 더 붉어졌다.

죽간의 굵기가 손가락 둘레 만큼 밖에 안되는 대나무들이 무슨 품종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마디마디가 또렷하고 죽간은 곧고 탄탄해서 절개가 있어 보인다. 바람에 흐느적 거리는 푸른 잎들은 또 길죽해서 여유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대나무를 심은지 3년이 지나자 대나무 근처에는 죽순들이 뾰족뾰족 여기저기에  돋아나고 얼기설기 엉킨 대나무 뿌리들이 땅우로 솟아 나오기도 했다. 정말 듣던 그대로 대나무는 생명력이 왕성하다. 한줄 대나무는 어느새 세줄 네줄이 되고 제법 작은 대나무 숲이 만들어졌다.

한여름날에 대나무 잎들이 바람에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면  찜질방 같던 무더위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오후가 되여 태양이 서쪽으로 옯겨지면서 해빛이 유리 창문을 통해 대나무 그림을 투영하면 집안 동쪽 벽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그림이 그려진다. 만일 운이 좋아서 그 시간에 공교롭게도 참새 두마리가 대나무 가지에 앉으면 대자연이 선사한 죽조도를 집안에서 감상할 수도 있다. 키 높게 자란 대나무들은 서쪽 창문으로 사정없이 비추던 해빛을 막아주고 뜨거운 태양열을 식혀준다. 작은 대나무 숲 덕분에 삼복철에도 집안이 너무 덥지 않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내리는 겨울날에도 대나무는 볼거리를 만들어 준다. 푸른 대나무 잎에 흰 눈이 소복히 쌓이면 엄동설한에 도도하게 피여난 흰 매화를 련상케 하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들여다 보노라면 운치있는 그림을 너무 쉽사리 얻은 것 같아서 혼자 슬그머니 웃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대나무 곁에 있는 해당화 나무에 풍성하던 가지들이 날로 야위여 가고 봄에 피여난 꽃들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 금년 봄에는 아예 가지가 앙상하게 말라서 죽어 버렸다. 석류 나무도 겨우 꽃 몇 개만 피우고 가을에는 애기 주먹만한 열매를 억지로 맺고 열매도 빨갛게 익지를 못하더니 작년에는 가지가 불에 탄 듯이 시커멓게 죽었다. 벌레가 나무를 갉아 먹는 줄 알고 아무리 살펴 보아도 벌레는 없는데 웬 영문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금년 봄에야 알았다. 대나무들이 해당화와 석류 나무를 죽였다는 사실을. 더위도 식혀주고 그림도 선사하면서 사시장철 나를 즐겁게 해주는 고마운 나무여서 그런지 이런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무식했던 나자신을 부끄러워 하면서 이제야 알아보니 대나무의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나무는 뿌리가 옆으로 줄기를 뻗어 나간다. 뿌리 줄기도 죽간처럼 마디가 생기고 마디마다 새싹이 돋아난다. 새싹들이 흙을 뚫고 땅우에 머리를 내밀며는 죽순이 되여 새로운 대나무 한그루가 자라난다. 만일 새싹들이 여전히 땅속에서 새로운 뿌리 줄기가 되면은 계속하여 빠른 속도로 옆으로 뻗어 나간다. 이렇게 대나무는 땅밑 작업 능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뿌리는 그물 모양을 만들어 나가면서 주변의 땅들을 점령하고 대나무 밭을 일구어 간다. 게다가 가로 세로 뻗어진 대나무 뿌리 망은 40센치메터 더 깊은 땅밑에 있으면서 주변의 다른 식물 뿌리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분과 양분을 모두 흡수해 버린다. 그러니 대나무 주변에 살고 있던 식물들은 저도 모르게 서서히 약해 지다가 어느날에는 죽어 버린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대나무 피해를 사람들이 적지 않다. 멋모르고 대나무 몇 그루를 밭에 심었다가 농작물이 피해를 본 농민들이 많다. 그들은 일제히 밭에 심은 대나무를 소멸해야 된다고 분노해 한다. 그리고 대나무 뿌리가 땅밑으로 건너 와서 이웃의 화초와 나무들을 죽게하는 바람에 이웃 사촌이 원쑤로 변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모두가 대나무의 욕심이 일으킨 불화다.

나의 고충을 들은 사람들은 대나무 뿌리를 썩게하는 농약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썩힌 깨를 뿌리 주변에 뿌려서 대나무를 소멸하는 방법도 가르켜 주었다. 그리고 겨울에 대나무를 짧게 잘라내고 남은 뿌리우에 검정 비닐막을 덮으면 공기와 해빛이 차단되고 수분도 공급되지 못하니 뿌리가 죽어 버린다고 한다. 그런데 웬지 이런 방법들은 잔인해 보이고 대나무가 아까워 진다.

대나무는 욕심은 과하지만 그래도 욕심이 있었기에 생명력이 왕성하고 절개가 있고 사철 푸를 수가 있지 않았던가. 이 과한 욕심이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살아남을 방법은 없을가. 이것 또한 대나무를 살리고 싶은 나의 욕심일 것이다.

계속하여 인터넷을 뒤졌다. 드디여 대나무를 죽이지 않고도 다른 나무들을 살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대나무 주변에 웅덩이를 50  센치메터 보다 더 깊게 파서 가로로 뻗은 대나무 뿌리들을 절단한다. 그리고 웅덩이에 시멘트를 반죽하여 부어 넣거나 벽돌이나 돌로 웅덩이에 벽을 쌓는다. 대나무 주변에 경계선을 만들어주는 방법이다. 그러면 대나무 뿌리는 더는 주변을 침범하지 않고 경계선 안에서 평화롭게 성장할 수도 있단다.

식물 나라에도 사람이 사는 세상 처럼 경계선이 필요한 것을 알았다. 다만 나무들은 욕심을 스스로 자제할 수 없으니 나무를 심은 사람이 경계선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것은 부모와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운동하는 능력, 공부하는 능력 등 여러가지 능력들을 키워주는 동시에 아직은 철없는 아이들이 키워진 능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법을 가르치고 룰을 설명해 주는 것과 똑 같다.

이제보니 대나무는 여러가지로 좋은데 욕심이 많아서 탈이다. 그래도 욕심을 말하자면 사람의 욕심과는 겨를 수 없을 것이다. 더 건강해 지려는 욕심, 부유하게 살고 싶은 욕심, 칭찬받고 인정 받고 싶은 욕심, 정복하고 지배하고 싶은 욕심... 이렇게 사람의 욕심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에 유능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불씨를 발견하고, 전기를 발명할 수 있었고 무선전도 발명하고 인터넷도 발명해서 인류사회가 지금같이 편한 세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던가.

문제라면 욕심이 능력을 키우고 능력이 욕심과 세력을 키운다는 것이다. 키워진 큰 욕심과 세력이 계속해서 팽창하면 대나무 뿌리가 되고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 누군가의 생명수를 먹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욕심과 세력이 키워진 사람들 옆에도 일찌감치 웅덩이를 주어서 주변의 약한 사람들도 상하지 않고 그들도 죄를 저질러 소멸당하지 않도록 경계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왕따”,“독점”과 같은 단어들이 소실될 지도 모른다.

사람이든 나무든 모두가 경계선을 넘지 않는다면 서로 가까이 살면서도 상처받지 않고 강자 약자 없이 자기 능력 만큼, 열심히 일하고 마음껏 즐기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내가 욕심을 더 부린다면 경계선 없어도 더불어서 다 같이 행복해 질수 있다면 더 좋겠다.

금년 겨울에는 대나무 주변에 웅덩이를 파야겠다. 그리고 내년 봄에는 그 옆에 해당화 나무와 석류 나무를 새로 심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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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자 프로필

1968 5 8 흑룡강성 가목사시에서 출생

1992 중국인민대학 행정학원 당안보호학과 졸업 청도시 로산구 대외경제무역추진위원회 근무

1994 청도시외사사무실 파견직원으로 주청도 대한민국총령사관 설립준비에 참여하고 총령사 비서로 근무

1996 7월부터 청도국제은행 근무.

2007 5월에 국제가정교육지도사 자격증 취득, 2015 10 중국과학원 심리연구소 아동발전과 교육심리학 석사과정 졸업

2013 9 ~ 현재 青岛可信心理健康咨中心 대표

청도조선족작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