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도라지>잡지 '장락주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수필


선녀야, 계곡물에 막걸리 부어라

이화

 



한창 여름이다. 깊은 숲, 맑은 물을 품은 계곡으로 떠나기 좋은 시절이다. 막걸리 담은 호리병을 옆구리에 차고.

무더운 여름도 계곡에서는 숲을 지나 술렁술렁, 물에 실려 콸콸 흘러가버린다.

여기는 산골짜기. 쩌엉- 하는 울림이 속을 파고 든다. 숲의 품이 이렇게 클가 싶다. 산소리, 물소리를 어우러 울림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청량한 바람이 나무사이로 불어와 살갗에 닿는다. 푸른 산내음이 페부 깊숙이 스며든다. 숲풀에서 들쥐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며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록음을 뚫고 이름모를 새들이 푸드득 날아오르는 비상이 보인다. 촉각, 후각, 청각, 시각이 모두 시원하다! 오감이 그대로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듯 기분이 낭자해진다.

산허리로 돌계단이 정연하게 깔려있다. 돌계단 양켠으로 짙은 숲이 펼쳐져 있다. 호젓한 오솔길에 나무잎과 가지들이 만든 그림자가 빛과 그늘의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골짜기 저 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산자락을 감돈다. 너무 맑다! 맑은 물에 발부터 담궈본다. , 너무 시리다! 조금도 참지 못하고 물에서 뛰쳐나온다. 언제는 더워서 헐떡이다가 조금만 시려도 참지 못하는 나는 참 변덕이 많고 변변치 못한 존재이다.

숲길을 따라 타박타박 걸기 시작한다. 걷다보면 암벽에 돋아난 푸른 이끼며 계곡물에 놓여진 돌 징검다리며, 아치형다리, 아담한 정자를 만난다.

이 계곡은 굽이굽이 열여덟 굽이로 산정상까지 통해있다. 한 굽이 돌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굽이 굽이 열여덟 굽이 휘휘 돌아 꼭대기까지

물의 사연 산의 이야기 한데 어울려 두리둥실

듣는 이 가슴 열리네 푸른 물 물씬 드네

 

어느 굽이를 돌아보니 작은 폭포가 드리워있다. 폭포밑에 청담()이 펼쳐진다. 높은 곳에서 그득그득 내려받아 낮은 곳으로 실실이 흘러보내주는 청담, 담고 받았다가 실실이 풀어주는 저 지혜, 걸친 옷 훌렁훌렁 다 벗어 던지고 저 지혜의 샘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 청담에 몸담그면 선녀라도 될수 있을가? 금강산 팔담에 내려와 목욕한다는 선녀가 부럽지 않으리라. 그런 선녀가 되고 싶다. 그래서 어느 나무군이 내 투명한 날개옷을 감춰주었으면 좋겠다. 아참, 근데 그 선량한 나무군이 먼저 사슴을 구해줬어야지. 사슴을 쫓던 사냥군도 등장해야 하고.

아니다. 옛날 스토리 다 지우고 새롭게 엮어야지. 내가 선녀라면 먼저 나무군 꼬셔야지. 내가 일부러 놓은 사랑의 투명한 날개옷 덫에 걸린 사냥군과 한평생 살아보고 싶다.

 

천년만년 살고지고

달과 함께 별과 함께

님과 함께 천년만년

 

으흐흐.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아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너털웃음이 샘물처럼 퐁퐁 올리 솟구친다.

! 선녀?! 웃기지 마! 선녀가 아니라… 아줌마지… 벌써 결혼을 해버린 아줌마가 뭔 상상을 이렇듯 아름답게 하는걸가. 그래도 흥얼흥얼 콧노래가 흘러 나온다.

 

상상은 죄가 아니지

욕심은 죄가 아니지

아줌마 욕심이 하늘에 닿으면

그대로 하늘 다 가지면 되지

아줌마 욕심이 산을 다 덮으면

그대로 산꼭대기에 올라 소리치면 되지.

 

시집 간게 무슨 원쑤랴. 나이 든게 무슨 한이랴. 지금 이 시간에 내가 이 아름다운 자연속에 독자청청 즐기고 있음에랴. 선녀가 못되어도 아쉽지 않다. 선녀보다 더 멋지게 이 계곡의 물소리와 잎의 색갈과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즐기고 있지 않는가.

 

궂은 세월 흔적 꺼내 바위우에 널어놓고

록수가 흘러가고 청산이 비껴가면

티없이 맑아질꺼나 하늘선녀 될꺼나

 

하늘선녀 못되면 인간선녀라도 되어야지. 일곱개의 감정과 여섯개의 욕망을 갖춘 아주 그럴듯한 인간선녀. 갑자기 옆구리에 찬 호리병속의 막걸리가 생각났다. 그렇지. 막걸리 거나하게 마시고 성수나게 타령까지 부를수 있는 그런 인간선녀가 되리라.

막걸리 한잔에 굽이굽이 오르는 숲길 마다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돗자리도 필요없다. 저쪽에 놓인 너럭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저 너럭바위는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던 바둑판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이곳에 자욱한 안개가 내렸다면 오솔길로 흰수염을 내리쓰는 신선들이 나타남직도 하다. 도포자락 가볍게 날리며 너럭바위에 앉아서 바둑을 두기도 하고 달빛 우러러 태극을 살펴보기도 하고, 저 흔들리는 나무다리에 걸터앉아 졸아보기도 하는… 그러면 선주는 아니지만 내 컬컬한 막걸리 한잔 권해보고 싶을텐데.

자리를 털고 일어나 굽이길을 걷는다. 굽이굽이 돌아 정상으로 걸음마를 옮긴다. 정상으로 가보고 싶은 내마음은 뭘까? 물은 그냥 밑으로만 흐르는데, 인간은 헐금씨금 높은 곳으로만 오르더라. 정상을 정복하겠노라 높은데로만 오르더라.

물에게 물어본다. 왜 밑으로 흐르냐고.

 

물이 밑으로 흐르는것은 자연의 섭리요,

밤낮, 사계절이 바뀌는것은 우주의 리듬이요,

당신들이 높은 곳으로 오르는것은 인간의 흐름이요,

희노애락 엇바뀜은 인간의 순리여라.

 

물이든 사람이든 섭리를 벗어날수 없고 순리대로 사는거란다. 수련하면 득도하고 때가 되면 깨우치는것도 다 순리가 아닌가.

정연한 룰속에서 적당히 오르다가 적당히 멈추다가 또 적당히 흐르다가 적당히 하늘하늘… 가물가물대면서…

오는 계절 동경하고 가는 시절 아쉬워라. 이 시절이 지나면 언제 다시 즐겨 놀리요. 계절은 흐르고 풍경은 바뀌는것.

여름의 정중앙에 서서 이 계곡의 가을을 그려본다. 대추나무에 대추가 대롱이고 감나무에 감이 열리는. 그리고 가을이면, 이 숲길에는 떨어진 잎새들이 사르륵 뒹굴겠지. 쫑도르르 솔방울 주으러 뛰쳐나온 다람쥐들도 만날수 있겠지. 작은 들국화가 별처럼 반짝이고 6각형 돌우물은 파랗게 익은 하늘을 고이 담고 있겠지. 저쪽 등성이에 무더기로 모여있는 억새도 하얀 꽃 피우겠지. 선경으로 날아간 신선의 도포 끝자락인듯, 긴 수염이 날린 흔적인듯. 휘여휘여…

청산아, 록수야, 이곳에 머무는것이 너무 좋구나. 그속에 적당히 머물렀던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어쩔수 없는 존재이지만.

계절을 모르는, 시절을 모르는, 유유하고 한가한 신선이 좋지만은 나처럼 아쉬움은 없을것이다. 신선이 아니라 사계절을 타는, 생로병사가 있는 저 양지바른 곳의 한뿌리 도라지라도 되고 싶어라. 보라색 꽃망울이 별처럼 반짝이는.

계곡이 시작되는 정상에 이르러 막걸리 호리병을 꺼내어 퐁퐁 솟는 샘물에 담근다. 손끝이 쨍하게 시린 물이다. 그대로 한 모금 손으로 떠서 입을 헹군다. 혀끝이 쨍해난다.

그 혀끝에 호리병을 댄다. 어느새 샘물처럼 쨍하니 시원해진 막걸리가 그대로 시원한 감로수 되어 혀끝을 적시고 목구멍을 적신다.

선녀인들 나에 비기랴. 신선인들 나에 비기랴.

꿀럭꿀럭 몇 모금 연거퍼 마시니 숨이 막혀온다. 아하, 이 자연속에 내 술 욕심이 너무 심했구나, 그치? 계곡아, 산천아.

호리병 아구리 밑으로 향해 계곡물에 막걸리를 붓는다. 맑은 샘물이 뽀오얀 막걸리를 싣고 밑으로 향해 달린다.

계곡물이 금방 취해서 막 막걸리향을 풍기며 한들한들 웃는다. 그 계곡물을 마신 산의 그림자랑 구름의 그림자랑 금세 취해서 흔들흔들 지루박 댄스를 추어댄다.

그래 그래, 취하지 않은 체 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지만, 지레 취해서 흥겨워 지는 건 자연의 몫일지라… 나도 취하고 너도 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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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 프로필 

1979년 길림성 안도현 출생.

2002년 연변대학 력사학부 졸업. 흑룡강신문사 기자 편집. 현재 연태은하유치원 원장.

수필 “선녀야 계곡물에 막걸리 부어라” 제9회 “도라지”잡지 “장락주문학상” 우수상 수상. 수필 “겨울수채화에는 그리움이 물들고” 흑룡강신문 제2회 랑시문학상 우수상 수상

수필, 시 등 수십편 발표

연변작가협회 회원, 청도조선족작가협회 부사무국장(연태)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