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자연에 대한 애착과 물아일체의 경지

-류해금의 시를 읽고

                                     김염화




시어는 시인이다. 시인이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서 선택하고 사용하는 어휘들이 그 시인의 시적 경향과 창작 특징을 보여 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어조 역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가 어떤 어조로 표현되고 어떤 분위기를 조성하느냐에 따라서 시의 향과 맛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류해금의 시를 보면 즐겨 쓰는 시어들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고 시인의 독특한 어조로 시어가 시의 구성 속에 잘 배치되여 물 흐르듯 매끄럽게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여 가는 것 같다.

 

1. 자연에 대한 애착

시에 등장하는 경물은 그냥 경물이 아니라 시인에 의해 감정이 이입된 경물이라고 봐야 한다. 시에는 일반적으로 경물에 관한 시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류해금 시에는 식물 특히 꽃에 관한 시어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봄날 단상> , <이런 울타리 하나 갖고 싶다>, <여름날 꽃이라면>, <여름날 계곡을 지나며> 등 몇 수의 시에서 18가지의 식물을 찾아 볼 수 있는데 다육이, 란화, 천년초, 고무나무, 개암나무, 줄장미, 콩꽃, 봉선화, 꽈리, 접시꽃, 자귀나무 , 백일홍, 석류꽃, 채송화, 담쟁이, 기장나물, 독초, 둥글레 등이다. 시인은 꽃을 향한 애정이 남다르며 여러 가지 꽃을 통해서 시적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능숙하다.

<봄날 단상>은 한 편의 동화 같은 시이다. 올망졸망 다육이 신나서 오동통통해지고, 란화 점잖은 허리를 편다. 그리고 잠꾸러기 천년초 잠을 자고 ’‘아빠 닮은 고무나무 새잎을 연다. 창턱에 놓여 있는 걱정 없고 명랑한 푸른 식구들이다. 시의 마지막 련에는 이 같은 동화와 대조를 이루는 시적 화자가 등장하여 가볍고 명쾌한 분위기를 외로움을 타는 심경과 연결시킨다. 여기서 풍상설우를 겪은 차잎만큼 쓰고 떫은 외로움이라고 하지만 록차에 봄을 말아 홀짝인다는 행위에서 있다 싶이 시적 화자가 어둡고 슬픈 메시지를 전달하고저 함은 아니라는 것을 있다. 귀여운 화분들과 일맥상통하는 일종의 앙증맞은 외로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이런 울타리 하나 갖고 싶다>는 사계절의 모습을 담은 울타리를 소재로 한 전원 풍경화 같은 작품이다. 시적 화자가 갖고 싶은 울타리는 개암나무 나무판자 만든 따듯한 기억이 묻어나는 울타리로 계절이 바뀌어도 마냥 예쁜 그런 울타리이다. 또한 봄바람 막지도 붙잡지도 아니하며, 화려한 줄장미 여름을 열어주고, 늦가을에는 자주색 콩꽃 피고 겨울에는 추운 기댈 있는 그런 울타리이다. 이렇게 예쁜 울 안에 소녀의 손끝에 묻으면 첫눈 내릴 때까지 지지 않는 봉선화랑 퍼렇게 익지 않고 애들의 입에서 노래 부르는 꽈리 심겠다고 것은 전원 생활의 순수함을 짙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정적인 묘사에 그치지 않고 동적인 묘사를 삽입하여 풍경화를 감상하는 내내 산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까지 풍경에 대한 묘사에 치우쳤다면 바라보는 눈들을 즐겁게 해주리, 미처 당신 마음 헤아리지 못했다면 장미 몇송이 따가게 아픈 가시 떼여놓으리, 추운 눈이 기댈 있게 울타리를 세워두리 같은 부분에서는 타인에 대한 시적 자아의 배려가 돋보인다. 울타리를 갖고 싶다고 말할 때는 시적 화자가 자기 만의 작은 소원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시에서는 그런 예쁜 울타리로 여러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여름날 꽃이라면>에는 접시꽃, 자귀나무 , 백일홍, 석류꽃, 채송화  다섯 가지 꽃이 등장한다. 시적 자아는 여름날에 이 다섯 가지 꽃이 되여 그 꽃들이 갖고 있는 성품대로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접시꽃 묘사함에 있어서 귀한 아니여도라고 하여 최치원의 촉규화 보였던 수레를 귀족들이 바라봐 주지 않는 소외된 접시꽃의 이미지를 련상케 한다. <여름날 꽃이라면>에서는 접시꽃 고귀하지 않을지라도 바람과 소나기를 이겨내는 견강함과 환하게 웃을 있는 락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거위털 같은 자귀나무 꽃처럼 가는 길에 꿀향기 뿌려주고, 피고 피고 또 피는 백일홍처럼 영원한 사랑을 하고, 석류꽃처럼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고 채송화처럼 깊숙이 몸을 숙여 아름다운 꿈을 꽃 피울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이 시적 화자는 여러 가지 꽃들의 장점을 노래하면서 그런 점들을 닮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앞의 수의 시가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이끌고 나갔다면 <여름날 계곡을 지나며>에서는 좀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담쟁이, 독초, 기장나물,  둥글레 같은 식물명이 등장하지만 담쟁이 허세가 하늘을 가리는 징그러운 존재이고 독초는 화려하고 아름다우나 검은 열매를 감추고 있고 기장나물 생긴 것과 같이 텁텁하다고 하여 식물들이 거의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 중에서 오직 둥글레만이 담박한 얼굴로 반겨  것이라고 하는데 시적 화자는 그런 둥글레를 찾지 못했다. 둥글레는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순수함과 밝음의 상징적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꽃을 비롯한 식물 외에도 시인은 , 밤, 창밖, 물방아, 장독, 호수, 무지개, 창공, 구름, 안개, 이슬, 산, 암석, 바위, 조약돌, 물고기, 메뚜기, 제비 둥지, 도깨비불 등 다양한 자연 관련 시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시인이 자연 경물을 통해서 쓸쓸하고 소극적인 감정보다는 순수하고 소박한 시어들로 따뜻하면서도 상쾌한 정서를 즐겨 표현하는 창작 경향이 두드러진다. 밝고 희망이 어린 어조는 의지를 나타내는 종결어미 -리/으리 반복 사용에서도 충분히 찾아 있다. 시인에 의해 만들어진 퍼소나는 시어의 선택, 어조의 반복 등 여러 요소들을 동원하여 시상을 창조한다.

류해금 시인은 시상을 창조함에 있어서 적극적인 태도와 락관적인 마음 가짐을 저버리지 않았고 그런 심경은 자연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전달되고 있다.

 

2. 물아일체의 경지

시인은 시를 창조하고 시는 언어로 구성되며 언어는 퍼소나에 의해 발화되기 때문에 시인이 퍼소나를 통해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사실 시인 자신의 목소리라고 있다. 따라서 시인의 관념이 실제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전하고자 하는 인생의 철리나 삶의 의미가 시에서 우러나올 수 있는 것이다. 자연 경물을 비롯한 다양한 대상들을 시에 투입시킨 류해금의 시에서는 그런 시적 대상이 곧 심상이고 퍼소나이고 시인 자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너지는 봄에>에서는 무너지는 것이 슬픔이고 가슴이라고 하는데 그 슬픔은 성에 서렸던 뒤벽이고 가슴 또한 매질할 있는 이다. 그러고 보면 벽도 무너질 수 있고 가슴도 슬픔도 무너질 수 있는 것으로, 이라는 대상과 시적 화자의 감정은 구분이 되고 분리할 없는 하나의 완전체를 이루고 있다. 벽이 무너지고 가슴이 무너져서 새싹의 정기 요동하는 봄꽃향기 담은 한줌으로 곱게 반죽해 매질한다. 그리고 매질한 자리가 마르면 거기에 뜨거운 화로 지지 않는 태양 그리고 싶어한다. 무너진다 시어를 반복해서 쓰고 있지만 작품에서는 역설적으로 봄의 정기와 꽃향기, 그리고 그로부터 얻게 되는 치유의 과정을 더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모든 무너지는 것들이 봄이라는 계절에 다시 소생하고 단단해지고 심지어 다른 것에 온기와 광명을 나눠 줄 수 있는 가치 있는 존재로 바뀌여 간다.

앞의 시에서 이라는 매개로 자연과의 합일이 이루어졌다면 <월심>에서는 그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천체로서의 달이면서 시적 화자 자신이다. 달에게는 해가 그대이고 시적 화자에게는 사랑하지만 가까이 다가갈 없는 이가 그대이다. 해와 나란히 창공에 서면 달은 그 미소 구름보다 엷은 눈에 띄지 않는 존재이다. 그대 주는 으로 어둠을 헤쳐왔지만 그대 다가올 때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슬픔을 이슬로 뿌려놓고 살며시 물러가겠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설 수 없는 애잔한 마음이 담담하고 다소곳한 행위로 발현되면서 그 밑에 깔려 있는 아픔과 희생과 사랑이 더 진하게 묻어나고 있다. 님이 가시는 길에 예쁜 진달래꽃을 뿌려드리겠다는 김소월 시의 어조와 유사하게 사랑을 위해 자아 희생을 하는 한 녀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조약돌>은 자연 속의 보잘 것 없는 한낱 조약돌 생명을 불어 넣어 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구수하게 엮어내는 같은 작품이다. 조약돌 전신은 , 암석, 바위였고 시내물에 빠진 뒤에는 물고기 되여 버렸다.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는 스쳐지나는 세월을 거슬러 가는 시적 화자이다. 인생을 살아 가면서 모난 데가 둥글어 가듯 물고기는 눈도 입도 지느러미도 다 지워지는 가운데 오직 반들반들한 심장 남아 변함 없는 령혼 지켜 준다. 시내물이 하염없이 흐르듯이 살아가는 동안 행복, 아쉬움, 그리움 등 온갖 것을 경험하게 되고 또 겪어 나가야 한다. 물속은 조약돌이 살아가는 공간이고 그 속에서 조약돌은 맑은 령혼을 굳건히 지켜 나가고 있다. 인간 역시 각자 나름의 생활 공간에서 생각 덩어리를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은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것이고 겪어야 할 것이기에 평상심으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옳음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여러 작품 중에서 <파란 고독>은 압축미를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인데 이 작품의 시적 정서는 정지용의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라는 시구를 련상케 한다. 백주의 미련이 깡그리 사라지고 허투의 꿈도 꾸지 않는 시각 세상과 격리된 같은 적막이 차오른다. 그 적막은 그저 하얗거나 캄캄한 것이 아닌 파란 색이다. 황혼과 칠야 사이에 보이는 파란 색은 화려하면서도 고독을 부르는 색채로 아이러니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작품 속에서 고독은 동적인 이미지로 잉크처럼 퍼지다가 먹물에 빠져버리고 그런 고독을 느끼는 령혼 파란 적막 속에서 목욕을 하고 허공에 별을 심는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 도깨비불을 찾아 헤매는 행위는 시 흐름으로 보아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출구를 찾는 것으로 해석이 될 것 같다. 그것이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도깨비불이라도 말이다. 이 작품 속에서 고독은 색채와 형체를 드러내는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또 인격화되면서 시적 화자와 일체가 되는데 여기서 시적 가치가 최대화된다고 할 수 있다.

 

류해금의 시는 자연을 담아내고 속에서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면서 시인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할 때에도 속에는 밝은 미소를 시적 자아가 있었고 해빛이 들어오는 계곡이나 파란 적막 속에서도 광명과 희망과 온기를 찾아 방황하는 시적 자아가 있었다. <월심> 같은 작품에서는 달이 나인지, 내가 달인지가 구분이 안 될 정도이고 님을 향한 애잔한 사랑이 잘 표현되고 있다. 시 속에는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데 필요한 어떠한 힌트도 제시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다른 시들과 구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류해금의 시세계에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일상에서 느끼는 여유와 희열을 잔잔한 물결에 실어 독자에게 조용히 건네 주는 분위기이다. <월심>, <파란 고독>과 같은 작품들이 커피처럼 건강에 대한 효능은 불확실하지만 향기는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라고 할 때 <여름날 꽃이라면>, <이런 울타리 하나 갖고 싶다>와 같은 작품들은 홍차나 과일주스처럼 영양도 있고 향도 좋아서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분히 전달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작시 기법 상의 특징을 말하자면 시가 산문처럼 막힘없이 읽힌다는 점이다. 짧은 편폭에 정서를 잘 압축하여 시상을 구축하고 있음에도 시어들의 선택과 맞물림이 조화를 이루어 시의 난해도를 줄이고 친화력을 증대한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름답고 적절한 시어, 시세계를 관통하는 잔잔하면서도 긍적적인 분위기가 류해금의 창작 경향을 보여 주는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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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염화 프로필

김염화()

2000 연변대학 조문학과 학사

2005 연변대학 조문학과 석사

2014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학박사

현재 청도농업대학 한국어학과 학과장

저서 조지훈 시어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