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인생은 따로 있다

연변시낭송협회 송미자 회장

 사진설명: 시낭송으로 인생을 노래하고 희망을 꿈꾸는 송미자 회장

 

 

일전 기자는 칭다오에 찾아온 연변시낭송협회 송미자 회장을 만나 그의 인생담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연변과 청도 사이를 자주 오갔다는 송미자(60세, 용정) 회장은 세상에 잘 알려진 시낭송가로 어려서부터 많은 아픔을 이겨내면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왔다고 말했다.

 

가지밭에서 울던 아이가 아나운서로

태어나서부터 유달리 성량이 높았던 회장은 잦은 울음으로 집안을 부산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한번은 책을 읽던 아버지가 그녀의 자지러진 울음소리에 참다 못해 포대기채로 들어다 울안 가지밭에 내다 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큰 울음소리 덕분에 엄마가 가지밭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여섯살 나던 해에 아버지가 ‘현행반혁명’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되면서 불행의 그림자가 뒤따랐다. 선생님과 학생들에 왕따당한 그는 한창 천진난만하게 뛰놀아야 할 나이에 친구가 없었다. 그 외로움과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독서였다. 글이 찍힌 책이면 문학서적이든 다른 어떤 책이든 관계없이 닥치는대로 다 읽었다.

덕분에 세상에 눈을 일찍 텄고 타고난 목소리로 인해 학교 방송을 도맡아 했다. 성분때문에 억울하게 남 다 매는 넥타이를 매보지 못했어도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면서 힘든 나날을 이겨나갔다.

 남달리 방송을 좋아했던 그는 가정형편때문에 라디오를 갖출 없어 추운 겨울날에도 라디오가 있는 이웃집 창가에 쪼크리고 앉아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소리를 시간 가는 모르고 듣군 했다.

하지만 다른 불행이 이어졌다. 그가 16살 되던 해에 명예를 회복하고 무죄석방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결국 실명한 것이다. 아버지를 위로해줄 수 있는 방법은 유일하게 책을 읽어드리는 것이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결혼전까지 그는 9년동안 매일 아버지에게 책을 읽어드렸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꿈은 무르익어갔고 실력도 날따라 제고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부터 송 회장은 교내 글짓기, 낭독대회의 대상을 독차지하다싶이 했고 자치주 규모의 낭송대회에서 2등상을 따내기도 했다.

  80년초 대학을 졸업하고 2만명 직원이 있는 기업에 출근하면서도 송 회장은 꿈을 시종 놓지 않았다. 동화구연, 시낭송, 낭독은 취미생활로 되어 그의 생활에 활기를 부여했다.  

  고국에서 꿈의 문을 두드리다

  출근하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쓴 시가 한국에서 상을 받게 되면서 송 회장의 사연이 한국에 알려졌고 2003년 봄 그는 제3기 세계한민족문화대제전 및 제1기 한민족문학포럼에 초청되여 참가하여 자작시 <민들레 고향>을 낭송하게 되였다.

   때부터 그는 한국에서 머물면서 KBS 방송을 비롯한 많은 매체에서 시낭송을 하게 되었다. 한편 가정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도 했는데 고운 목소리로 자주 책을 읽어주어 집주인은 중국에서 '별난 보모'가 왔다고 소문을 내기도 했다. 그가 가르친 아이들이 학교 논술대회에서 금상을 받고 전경련  웅변대회 최우수상까지 받아 안주인은 너무 기쁜 나머지 봉급을 인상해주고 비싼 금목걸이도 선물했다.  

  한국 시단에서 인정 받아

   회장은 한국에서 시낭송 활동을 줄기차게 하는 한편 쓰기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2007년 그는 <고목>이란 시로 신인상을 받으면서 정식 한국문단에 등단했으며 한국시인명부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대한문인협회 김락호 이사장의 도움으로 그는 한국낭송협회 서울지회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시낭송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해왔다.  

  2010년에는 연길에서 중국조선족문단에서 처음으로 되는 음반시집 <당신의 이름으로>를 냈다.

  2011년 4월,  한국에서 400명이 참여한 '청록파와 함께 하는 시낭송대회'에  30명 안에 입선되어 국회의사당 무대에 올라 낭송하기도 했으며 이듬해 한국 강릉 MBC,  한국재능시낭송협회, 심련수 선양회에서 공동주최한 시낭송대회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하면서 명실공히 시낭송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연후 '독도사랑, 한글사랑 시인대회'에서 <불멸의 혼불>이라는 시로 금상을 받았으며 한국 색동어머니회에서 주최한 어머니 이야기대회에서 동화구연 금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동화구연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준비된 삶을 꽃피우다

  2012년 12월 연길로 귀국한 송 회장은 이듬해 6월 연변시낭송협회를 설립했다. 주로 시낭송, 동화구연 두개 부문으로 회원을 모집했다. 그리고 연변작가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형문학행사에 시낭송을 선보여 이채를 돋구었다.  

   회장은 기업 후원을 받아 '용하컵' 시낭송, 동화구현 대회를 발족했으며 현재까지 11회를 진행해왔다. 현재는  이 행사가  길림성 독서절의 브랜드 문화행사로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어린이 율동시를 창작하고 개발했으며 현재까지 그가 만든 30여편 율동 동시가 시문학축제와 시낭송콘서트 외 여러 문화행사에서 연출되었다.  

  지난해에는 선전 예지아과학기술그룹의 후원으로 '예지아컵' 시낭송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으며 예지아과학기술그룹은 향후 5년동안 꾸준히 이 시낭송대회를 후원하기로 약속했다.

  현재 회장은 온라인, 오프라인, 동영상 등 다양한 형식으로 시낭송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시낭송행사를 기획하고 음악편집, 무대배경, 시화 등 모든 부분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다.  

   회장은 인생이 연극이라면 시는 생활의 구구절절이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시낭송은 아름다운 노래이고 자체라고 말했다.  

  / 김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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