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계열보도 10

나와 골프 이야기

 

골프를 통해서 진실한 자아를 되찾다

칭다오크루(柯露)상업관리유한공사 박일화 사장

사진설명: 박일화 사장 독사진

 

 

  “골프에 감사를 드립니다. 진실한 자신을 되찾게 해주었어요.

  요즘 칭다오시 청양구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대게나라(蟹后) 식당과 나인에브뉴(九街)레스토랑의 주인 박일화 사장의 말이다.

  고향이 흑룡강성 밀산인 박일화 사장(47세)은 벌리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칭다오에 진출했다.

  2005년에 청양구 석복진 옥황령(玉皇岭)공업단지에 5000제곱미터의 공장을 가동하고 직원 300여명을 거느리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한국 이마트에 '장바구니' 즉 천가방을 납품하였고 일본의 무지(无印良品)에도 브랜드 면가방을 납품했다. 이외에도 등산배낭에서 제1 브랜드라는 탐로자(探路者) 제품을 오더생산(OEM방식)하였다.

 2008년부터 3년간 그의 사업은 절정에 이르렀는데 당시 연간 매출액이 8000만 위안에 달하기도 하였다. 

 골프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지 3개월만에 화산골프장 5번홀에서 4번 아이언으로 환상의 홀인원을 기록했다. 1년만에는 해양골프장에서 78타 성적의 싱글에 달성했다.

 2009 12 23, 박일화 사장은 며칠전에 천태골프장에서 홀인원을 기록한 이태룡 사장을 축하하여 국제골프장에서 기념라운딩을 가졌다. 이태룡 사장이 고맙다는 차원에서 홀인원을 함께 경험한 박일화, 백승범, 조학동 등 멤버들을 국제골프장에서 초청하여 함께 라운딩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날 경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16번 파3홀에서 박일화 사장이 친 공이 그대로 홀컵에 빨려들어갔다.

  “와- 홀인원이다!-

  일행은 난리가 났다. 홀일원 기념 라운딩에서 또다시 박일화의 홀인원이 터진 것이다.   남들은 평생 한번도 하지 못하는 홀인원을 박일화 사장은 이렇게 두번이나 경험했다.

  칭다오조선족골프협회 배광명 4기 회장(2006-2007), 박영권 5기 회장(2008-2009), 황민국 6기 회장(2010-2011)단에서 부회장, 비서장 직을 맡았던 박일화 사장은 2012년에 제7기 회장(2012-2013)에 당선되었다.

  황민국 6기 회장 때는 부회장 겸 비서장직을 겸했는데 2011년에 제12기 전국조선족기업가골프대회를 칭다오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하는데 많은 공로를 세웠다.

  2011 9 8일 저녁 청양구 홀리데이인호텔에서 400여명 선수가 참석한 가운데 12기 전국골프대회 시상식이 개최되였다. 칭다오팀의 선수들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묵직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박일화 사장은 칭다오팀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최호림, 윤동범, 조학동, 임파, 이명성, 김철호, 황동길 등 선수들과 함께 단상에 올라 두팔을 높이 쳐들고 승리의 희열을 만끽하였다.

 2013년 황민국 회장이 제4기 전국조선족골프협회 회장으로 부임하면서 박일화 사장은 따라서 3년간 전국조선족골프협회 비서장이라는 중책도 맡고 전국조선족골프대회를 연속 3년 황민국 회장을 보좌하여 진행했다. 2013년에는 한국 제주도, 2014년에는 다롄, 2015년에는 톈진에서 전국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업과 골프에서 쌍풍수를 이루면서 박일화 사장 눈에는 세상의 모든 일이 거치는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위기는 소리없이 다가왔다.

  2011년에 박일화 사장은 제조업에서 손을 떼고 청양 시대광장 내에 슈바() 라는 대형 클럽을 개업했다. 연후 그는 슈바의 면적을 대폭 확대하여 1500제곱미터까지 늘렸다. 동시에 수웨이청() 4층 건물을 통째로 임대하여 대게나라, 나인에브뉴 등 업체들을 유치하여 서비스분야 업무를 확대해 나갔다.

  제조업에서 완전히 서비스업종으로 전변한 것이다. 그러나 서비스업의 물은 깊고 차가웠다. 무리하게 추진해나가던 가게들이 하나둘씩 불황을 겪으면서 문을 닫기 시작했다. 손실이 눈덩이 처럼 불어났다. 그는 인생의 최저점으로 끊임없이 추락했다.

  사업이 빙점에 이르면서 골프도 접었다. 그렇게 즐기던 골프를 5년여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박일화 사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당시 시중에는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다.

 두문분출하고 몇년동안 명상에 잠겼던 박일화씨는 드디어 진실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였다. 어떠한 가식이나 꾸밈이 없는 소박한 본인의 진면모를 되찾은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입니다. 누구를 탓할 하등의 핑게가 없어요.

  철저한 자아반성을 통한 박일화 사장은 재기에 도전한다. 그 많던 업체들을 하나둘씩 정리하고 재정비에 나선 것이다.

  2018년부터 그는 1층에 있는 대게나라와 나인에브뉴의 독점 영업권을 확보했다. 그외 2층에 미스터김(DNA) 미용미발과 제이진 양복정장, 3층에 오웨이스 런닝머신(健身房) 4층에는 한국비자센터를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최근에는 나인에브뉴의 칭다오 시내 체인점확장 사업도 구상 중에 있다.

  대게나라 식당 3층도 고급스러운 연회청으로 리모델링하여 80명 좌우 용납할 수 있는 행사장으로 탈바꿈하였는데 연말연시면 여러 단체모임 행사가 꼬리를 물고 있다. 전에 고맙게 동업을 함께 했던 주주들의 투자원금도 빠짐없이 돌려주었다.

 금년 봄 박일화 사장은 골프채를 다시 잡았다. 몇년간 손을 놓았더니 이제 겨우 백도리(100)를 면했다면서 얼굴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는 인생의 40대에 겪었던 교훈만큼 40불혹이란 말에 대한 이해도 남달랐다.

  40불혹이란 40세 나이가 되면 더이상 방황과 미혹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고 쉽사리 외물(外物)에 유혹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화려하거나 팽창된 모습이 아닌 소박하고 진실한 지금의 모습이 바로 저의 진면모입니다.

 박일화 사장의 진실하고 실속있고 알찬 재기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 박영만 기자

  2020년